
눈을 떠보니, 빛 하나 들어오지 않는 낯선 방 안이었다.
너무 어두운데, 생각하며 벽을 따라 전등 스위치를 찾아보았지만 스위치라고 할만한 장치는 어디에도 없었다.
어쩔수없이 주머니에 있는 라이터를 사용하니 희미하게나마 눈앞의 물체가 보이기 시작했다.
그건 곧 작은 촛대와 쪽지 하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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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쪽지를 보았다면 다행이에요, 적어도 상식을 벗어나는 행동은 하지 않을테니.
축하드려요. 당신은 초대받은거에요.
물론, 당신에겐 이 상황이 축하할 상황은 아니죠.
결론부터 말하자면, 당신은 위기에 처해있어요.
조금이라도 방심하거나 잘못된 행동을 취하는 순간, 음... 적어도 편히 죽지는 못할거에요.
걱정마세요, 아직 기회는 남아있어요.
당신 뒤에 작은 탁자가 있는거, 눈치챘나요?
그 위에는 다량의 홍차 티백이 있을거에요.
간단하게, 티백의 수량만큼 당신의 목숨이 있다고 생각하세요.
매우 처참하고 끔찍하게 죽어도, 티백이 존재하고, 당신이 그걸 우려서 마신만큼 이 방에서 몇 번이고 다시 시작할 수 있어요.
그러니 너무 긴장하지 마시고 이제부터 쪽지에 쓰여진 말을 잘 따르세요.
1. 적어도 이 방에서는 편히 휴식을 할 수 있어요.
여기서는 아무런 위협도, 공복도, 갈증도, 심지어 아픔도 느껴지지 않아요.
그러니 최대한 이곳에서 준비를 마친 뒤, 자신있을 때 방문을 열고 나가도록 해요.
나갈 때 티백 하나를 챙겨가는거 잊지마세요.
당신에게 매우 중요하답니다.
2. 방문을 열고 나가면 "아가씨"가 계실거에요.
아가씨는 당신을 보고 홍차와 다과를 준비할테니 잠시만 기다려달라고 할 거에요.
당신은 이에 수긍하고 얌전히 기다리시면 된답니다.
곧바로 아가씨는 티타임 준비를 끝마치고 돌아오실거에요.
명심하세요. 당신에게 가장 중요한 건 그녀와의 티타임을 무사히 끝내는 거에요.
3. 아가씨에게 무례를 저지르지 마세요.
말 그대로 인간으로서, 손님으로서 지켜야하는 예의를 말해요.
면전에 대고 맛이 없다느니, 여기서 나가게 해달라고 울부짖는다던지, 멋대로 자리를 이탈하든지 등의 부적절한 행동을 말하는 거 랍니다.
애초에 키가 3m에 육박하는 그녀를 보고도 그런 행동을 하실거라는 의심을 하지 않는다지만...만약이란게 있으니까요.
꼭 부적절한 말을 해야겠다면 완곡하게, 빙 둘러서 말하는게 좋아요.
화장실에 가고 싶다면 "잠시 꽃을 따러 갈 수 있을지?" 라고 말하는 거 처럼 하면 돼요.
물론, 이곳에는 화장실은 커녕 변의도 없으니 이런 말은 심기를 살짝 불편하게 할 수 있지만요. :)
다만 예상치 못한 실수로 그녀를 화나게 하였다면 차라리 매우 무례한 말을 속사포로 꺼내세요.
그러면 아가씨는 매우 분노하여 당신을 찢고, 으깨 놓을 테지만, 말씀드렸죠? 아직 기회는 있다고.
어중간하게 죽지도 못하는 거보단 아주 아프더라도 일단 한 번 죽는게 오히려 더 좋을거에요.
4. 티타임 시간에는 서로간의 대화가 오갈거에요.
간단하게 잡담으로 오늘 하루는 어땠는지, 평소에 무엇을 하는지 등등 얘기를 나눌거에요.
앞서 말했죠? 당신은 이 티타임을 무사히 마쳐야한다고.
단순히 대화하면 되는거 아니냐 할 수 있지만 몇 가지 이야기하면 안되는 주제가 있어요.
여기에 그걸 적어놓을게요.
4-A. 각자의 소원에 관한 주제
아가씨는 당신의 소원을 이루어줄 수 있어요.
물론, "이루어줄 수만" 있죠.
소원 자체는 이루어 지겠지만, 그게 당신이 진정 원한 것인지는 글쎄요, 전 확신이 들지 않네요.
또한 그녀에게도 소원이 있어요.
당신에겐 그녀의 소원을 이룰 수 있는 능력도, 시간도, 아무것도 없어요.
한 번 뱉은 말은 줍지 못한다는 옛말을 알고있기를 바래요.
4-B. 가족 구성원에 대한 주제
어째서인지 아가씨는 자신의 가족이야기를 꺼내기만 해도 발작을 일으켜요.
위에서 말하였고, 다시 말씀드립니다만, 3m에 육박하는 그녀의 발광을 감당할 수 있다면 상관없어요.
적어도 당신이 평범한 인간이라면, 툭 치기만 해도 골절은 확정이란 것 만 알아두세요.
4-C. 좋아하는 음식 이야기
너
이 한 단어만으로 왜 하지말라는지 알 거라고 믿어요.
4-D. 거짓말
방금전에 아가씨는 당신의 소원을 들어줄 수 있다고 했어요.
그러한 힘을 가진 존재가 겨우 평범한 거짓말 하나를 눈치채지 못할거라고 생각하세요?
4-E. 같은 주제를 2번 이상 언급하기
재시작은 기회를 주는것이지, 상황을 리셋시키는게 아니에요.
비록 그녀는 티타임을 준비하는 과정을 매번 하겠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전에 있었던 일을 없애주는것이 아니란 소리죠.
그녀는 당신과 이야기한 내용을 빠짐없이 기억하며 반복되는 내용은 무척 질려해요.
질려한다는건 싫증이 곧 난다는 의미이기도 하죠.
5. 티타임은 "집사"가 돌아오면 끝나요.
집사는 이 곳의 아가씨와 같이 지내는 유일한 존재에요.
초인종이 울리고 집사가 모습을 드러내면 안심해주세요.
그는 비록 인간은 아니지만 인간의 마음씨를 가진 흔치않은 존재에요.
집사는 아가씨에게 귓속말을 하고 곧이어 그녀는 잠시 급한 일이 생겨 자리를 비우겠다고 할거에요.
그 후 집사는 아가씨와 관련하여 당신께 죄송하다고 사과한다음 당신이 원하던 곳으로 돌려보내줄거에요.
당신의 목숨과 같다고 했던 티백 하나를 집사에게 건네주고 그의 안내를 받으며 이 곳의 현관으로 나가면 될 거에요.
6. 혹시모를 기타 주의사항들
티백내의 내용물은 독성이 꽤나 강해요.
어째서인지 물에 담그면 독성은 사라지지만요.
만약에 반드시 죽어야하는 상황이 올 때는 요긴하게 사용할 사용할 수 있을거에요.
다량의 티백을 모두 소진하여 하나만 남았을 때 위의 예시처럼 사용하는게 좋을 수도 있어요.
아니면 용기있게 나가는것도 방법이죠. 행운을 빌게요.
집사는 티타임이 시작하고 최소 20분 이내에서 최대 96시간 이후에 찾아올거에요.
100시간이 지나도록 나타나지 않을때에는 무언가 꼬였다는 뜻이니 신속하게 재시작 해주세요.
앞에서 다 설명하였듯이, 여기선 대화의 중요성이 무척 부각되어요.
당신이 활기차고 대화를 밥먹듯이 하는 사람이면 좋겠네요.
+
만약 아가씨가 당신이 깨어난 곳의 방문을 노크하거나 들어오려고 한다면 방법이 없네요. 죄송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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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8번째다.
점점 대화 주제가 사라져간다.
매 시도마다 70시간 이야기를 나눠보았지만 집사는 단 한 번도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이러다가 티백이 다 떨어지는거 아니냐고 걱정하던 찰나, 실수로 젓고있던 티스푼을 놓쳐 바닥에 떨구었다.
다행이 이정도의 실수는 넘어가주는지 그녀는 입꼬리만 살짝 올라간채 홍차를 즐기고 있었다.
잠시 의자에서 내려와 바닥에 떨어진 티스푼을 줏었다.
그리고 의자로 돌아가 앉기 위해 고개를 든 순간, 나는 탁자 밑을 보았다.
그곳엔 찢어진 듯한 종이조각이 꽃혀있었다.
종이조각에는 아주 조그마하게 글씨가 써져있었다.
"방에 있는 쪽지 믿지마. 애당초 그 쪽지를 쓴 놈이 누구 일지 조금만 생각하면 답이 나올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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